모짜르트 교향곡 29번 in A, K.201

모짜르트(1756-1791)
천재로 태어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 천재성을 제대로 발휘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다.
남에게 행복을 주는 천재성을 발휘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 천재이면서 부지런하기까지
하다면 그 천재는 숭배되고 찬양받는 것이 마땅하다. 200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으면서,
천재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일찌감치 알아보았으며, 큰 업적으로 길이길이 타인을 행복하게 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모짜르트다.
모짜르트를 듣는 순간만은 생활의 가운데 묻은 진애(塵埃)가 모두 털어지는 듯 그지없이 맑고 고운 기분이다. 나만이 아니라 모짜르트를 듣는 누구나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일 게다. 교향곡 40번의 우수, 41번의 장엄함, 바이올린 5번의 아름다움,레퀘엠의 비장함, 피가로의 유머,
피아노협주곡 21번의 우아함 ...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재능 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찔한 기분까지 들 정도이다.
어느날 기자가 아인슈타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물리학은 자연과학 중에서 가장 종교, 철학과
밀접한 학문이기에 물리학자로서의 종교관은 어떤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대답은 이랬다고 한다.
"죽음이란 더 이상 모짜르트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 과연!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이었을까?
살리에르로 대표되는 평범한 사람은 그런 천재에 오히려 치를 떨고 질투로 어쩔줄 몰라하는 것이 보통의 감정이겠다. 사실 그렇다.
모짜르트의 천재성에 대한 찬탄과 감동을 하면서도, 만일 내 주위에 모짜르트처럼 천혜를 얻은 행운아가 있다면
그를 질투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리라. 평범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찌 그러지 않으랴. 모짜르트를
시기하지 않고, 다만 사랑하고 아끼기만 하는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지 이미 217년이 지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천재이기 이전에 따뜻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음악들이
나올 수가 있었겠는가? 모짜르트의 놀라운 재능 이전에 모짜르트의 이런 따뜻함을 생각하고, 또 그런
따뜻함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세상의 천재들이 다 모짜르트와 같다면, 아니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숨은 천재를 모짜르트처럼 아름다운 일에만 쓴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질까도 공상해보는 것이다.
마치 모짜르트의 음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