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ns une taverne du vieux Londres Ou se retrouvaient des etrangers Nos voix criblees de joie montaient de l'ombre Et nous ecoutions nos coeurs chanter C'etait le temps des fleurs On ignorait la peur Les lendemains avaient un gout de miel Ton bras prenait mon bras Ta voix suivait ma voix On etait jeunes et l'on croyait au ciel La, la, la... On etait jeunes et l'on croyait au ciel |
오래된 런던의 한 카페에선 낯선 이방인들이 서로 만나곤 했답니다. 즐거움으로 들떠 떠들석한 우리들의 목소리는 어두운 곳으로부터 들려왔었지요. 또한 우리는 우리들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을 듣곤 했었어요. 그때는 정말 한창 때였어요. 우리는 두려움을 몰랐었지요. 매일 매일이 꿀처럼 달콤한 나날들이었어요. 당신의 팔은 저의 팔을 잡았고 당신의 음성은 저의 음성에 잇따랐어요. 우리는 젊었었고 하늘을 믿었었죠. 라라라... 우리는 젊었었고 하늘을 믿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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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puis sont venus les jours de brume Avec des bruits etranges et des pleurs Combien j'ai passe de nuits sans lune A chercher la taverne dans mon cⓒ≪ur Tout comme au temps des fleurs Ou l'on vivait sans peur Ou chaque jour avait un gout de miel Ton bras prenait mon bras Ta voix suivait ma voix On etait jeunes et l'on croyait au ciel La, la, la ...... On etait jeunes et l'on croyait au ciel |
그리고나서 그 후엔 안개낀 나날들이 다가왔어요. 이상한 소문들과 눈물이 함께 말이에요. 얼마나 저는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 카페를 찾으려 어두운 밤들을 보냈던지요. 찬사를 받던 그때처럼, 우리가 두려움없이 살았고 매일 매일이 꿀처럼 달콤했던, 그 모든 시절이 남아 있는 그 카페를 말이에요. 당신의 팔은 저의 팔을 잡았고 당신의 음성은 저의 음성에 잇따랐어요. 우리는 젊었었고 하늘을 믿었었죠. 라라라... 우리는 젊었었고 하늘을 믿었었죠. |
Je m'imaginais chassant la brume Je croyais pouvoir remonter le temps Et je m'inventais des clairs de lune Ou tous deux nous chantions comme avant C'etait le temps des fleurs On ignorait la peur Les lendemains avaient un gout de miel Ton bras prenait mon bras Ta voix suivait ma voix On etait jeunes et l'on croyait au ciel La, la, la ...... On etait jeunes et l'on croyait au ciel |
저는 안개를 몰고가는 상상을 했었지요. 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리고 저는 밝은 달을 만들어내곤 했답니다. 우리 두 사람 모두가 예전처럼 노래했던 그 달을 말이에요. 그때는 정말 한창 때였어요. 우리는 두려움을 몰랐었어요. 매일 매일이 달콤한 꿀과도 같은 나날들이었어요. 당신의 팔은 저의 팔을 잡았고 당신의 음성은 저의 음성에 잇따랐어요. 우리는 젊었었고 하늘을 믿었었죠. 라라라... 우리는 젊었었고 하늘을 믿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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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ce soir je suis devant la porte De la taverne ou tu ne viendras plus Et la chanson que la nuit m'apporte Mon coeur deja ne la connait plus C'etait le temps des fleurs On ignorait la peur Les lendemains avait un gout de miel Ton bras prenait mon bras Ta voix suivait ma voix On etait jeunes et l'on croyait au ciel La la la... On etait jeunes et l'on croyait au ciel |
그런데 오늘 밤 저는 당신이 이제 더 이상 오지않을 그 카페 문 앞에 있답니다. 또한 밤이면 제가 노래를 하던 그 카페 문 앞에 그렇게요. 이미 저의 마음은 더 이상 그때의 밤을 알지 못해요. 그때는 정말 한창 때였어요. 우리는 두려움을 몰랐었어요. 매일 매일이 달콤한 꿀과도 같은 나날들이었어요. 당신의 팔은 저의 팔을 잡았고 당신의 음성은 저의 음성에 잇따랐어요. 우리는 젊었었고 하늘을 믿었었죠. 라라라... 우리는 젊었었고 하늘을 믿었었죠 |
서구 사회에서 수십년에 걸친 스타로써의 수명을
세계적인 판매 수량을 비교 한다면 마돈나를 든다.
그러한 마돈나 숭배와 맞먹거나 그를 뛰어 넘는 스타를 들자면
마이클잭슨 이나 프랑크 시나트라,엘비스 프래슬리, 비틀즈등 남자가수 들을 들수밖에 없다.
이런 마돈나와 비견될만한 유일한 여성은 이탈리아계 프랑스 가수 달리다 뿐이다.
미국에서 그녀의 이름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는 실제로 프랑크 시내트라와 비틀즈를 여러번 이긴 적이 있다.
1933년 1월 1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생, 이집트 교외에서 성장하였고,
달리다의 할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이집트로 이주한 사람이었다.
달리다의 아버지 삐에뜨로(Pietro)는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
바이올린 연주자로 일한바 있어 달리다는 어릴적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랐다.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이태리계인 그녀는1954년 미스 이집트로 뽑혔을만큼
뛰어난 미모를 앞세워 프랑스로 건너와 영화배우로 데뷔하여
밤비노가 히트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샹숑가수로 부상하였다.
그녀의 사생활은 복잡다난하여 알랭 들롱을 비롯한 몇몇 남자들과 염문을 뿌린뒤
라디오 프러듀서 뤼시앵 모리와 결혼했지만, 불과 석달 뒤 화가 장 소비에스키와 눈이 맞아 달아났다.
소비에스키와 헤어진 뒤에는 이탈리아의 가수겸 작곡가 루이지 텡코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텡코는 자신의 곡 '차오 아모레'로 산레모 가요제에 나가 달리다가
그랑프리를 받지 못하자 자살했다. 그 직후 달리다의 첫 남편 모리스도 자살했다.
생전의 달리다는 영어권 세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중동,일본에서는 대중의 우상이었다.
죽기 한해전 그녀는 지친 몸으로 영화 촬영을 위해 고향 카이로를 방문했다.
고향 사람들의 환대는 그녀 자신도 놀랄만큼 뜨거웠고,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활기로 충전된 듯 보였다.
그러나 그활기는 완전히 사위기 직전 활짝 피어난 마지막 불꽃이었다.
미모와 재능을 겸비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지만
평생의 절반을 우울증에 시달려 1987년 자살함으로 아까운 생애를 스스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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